런던에서 1년 게약으로 온 거라 세간살이도 제대로 안 갖춰있다는 걸 뻔히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 실은 주급제라는 걸 얼마 전에 안 팀장이, 코스튬을 홍보부 측에서 알아서 구해주기로 했다. 어떻게 사슴 인형탈을 구해온건지 뒷좌석에 넣고 운전석에 올라탄 사쿠라이가 계속 한숨을 쉬었다. 어제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쪽잠을 잔 날 대신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운전하겠다는 놈이 아침부터 기분나쁘게 한숨이었다.
"야! 내가 아무리 크리스마스 싫어한다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한숨은 아니지 않냐?"
승질을 냈지만 평소와 달리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한소리 더 하려고 하자 후드를 뒤집어 쓰고 창 밖으로 얼굴을 향한 애한테 뭐라 해봤자 힘만 빠질 뿐이라 그냥 입을 다물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차에 내려 뒷좌석에서 사슴 인형탈을 들고 먼저 집으로 가는 사쿠라이 뒤로 조용히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재수없는 놈.
크리스마스 당일 새벽, 고열이 올랐다. 상비해둔 체온계로 열을 재니 병원 갈 정도로의 심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높았다. 어떻게 하지 싶다가 해열제를 먹고 자고 일어나니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저도 모르고 끼고 잔 체온계를 보자 열은 새벽에 비해 내려가있었다. 안도의 숨을 들이쉬자 몸에서 쉰내가 났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 언제 나와있었는지 거실 쇼파에 앉아 날 물끄러미 보는 시선을 무시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두통이 올 정도로 찬 오렌지 쥬스를 원샷을 하고 싱크대에 컵을 두고 나오자 내 앞을 막고 뭔가 건넸다. 그리고 곧바로 제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뭐야, 손에 들린 종이를 보자 작은 카드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사토시.]
우스깡스러운 산타와 사슴이 그려져있는데 글씨는 아주 고급스러운 필기체였다. 분명 이건 팔지 않고 누군가 만든 카드였다. 만든 건 아무래도 준 장본인이겠지. 어이가 없어서 카드를 다시 봉투에 넣으려고 했는데 산타를 자세히 보았다. 카드엔 사슴이 산타에게 사과를 주는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코 끝이 괜시리 시려져 마른 기침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나갈 채비를 하였다.
크리스마스 파티는 정신이 없었다. 크리스마스라 난리난 아이들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산타 코스프레한 나는 본의아니게 계속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줘야했다. 물론 사슴 역할을 한 사쿠라이도 옆에 서서 사슴 역할을 돈독히 해야했다. 아이들은 사쿠라이의 등에 올라타거나 사슴의 붉은 코를 쥐어잡고 흔들거나 했다. 다행히 보다 못 한 팀 멤버 몇 명이 아이들을 말리긴 했지만 이미 사진 찍을 거 다 찍고나서였다.
"먹어."
"고마워."
선물을 나눠주는 타임이 되자 간신히 풀려난 사쿠라이와 나는 구석 진 자리에서 식은 음식을 씹어야만 했다. 질컹질컹 씹으며 선물 발표를 영혼없이 보고 있었다. 여전히 양 볼이 터질 듯이 먹고 있는 사쿠라이를 보고 혀를 찼다. 체할까봐 마실 것을 가지러 일어섰는데 갑자기 주변에서 날 보고 박수를 쳤다. 에-? 주변에서 빨리 앞으로 나가라고 성화라 어떨결에 앞에 나왔더니 다짜고짜 뭔갈 쥐어주고 사진을 찍었다. 에-? 옆에서 구단장이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했고 악수를 하고 다시 사진을 찍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손에 들린 큰 판넬엔 하와이 여행권이 들렸다. 무려, 2인이었다. 나는 놀라 앞을 쳐다보았고 여전히 아이들에게 둘려싸여 사슴흉내를 내고 있는 사쿠라이가 활짝 웃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샤워실로 향한 사쿠라이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을텐데 웃으면서 들어간 사쿠라이가 갑자기 무서워서 한기가 들었다. 내가 사쿠라이에 욕을 한 이유는 사쿠라이의 입방정 때문이었다. 둘 다 알콜이 든 샴페인을 마신 탓에 팀 리더인 리차드의 차를 얻어타고 돌아왔다. 큰 판넬을 가져가라는 구단장의 말에 판넬을 들고 뒷좌석에 앉아있는 나에게 리차드의 파트너인 해리가 누구랑 갈꺼냐고 물었다. 부모님에게 선물을 드릴까싶다고 말할려는 찰나 사쿠라이가 나랑 가지! 라고 말하는 통에 우리는 리차드와 해리의 뜨거운 눈길을 받으며 집에 도착했다.
"아, 시원해! 야 우리 맥주 마실래?"
샤워 후 여전히 타올로 하반신만 가린 채 나와 맥주를 가지러 냉장고를 가는 사쿠라이를 향해 판넬을 던졌다. 큰 판넬의 무게 때문에 얼마 날지 못 하고 툭 떨어졌다. 이미 맥주를 따서 사쿠라이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아오, 머리를 헝클이며 쇼파에 눕자 사쿠라이가 가까이 와서 나를 내려다보더니 맥주를 손에 쥐어주고 제 방으로 돌아갔다.
하와이는 가기 싫다. 왜 하필 하와이야. 라고 구단장에게 따지고 싶었다. 아니, 유럽 근처에 얼마나 좋은 휴향지가 많은데. 아니 그리스로 하던가 왜 하와이냐고. 나는 거실에 옷을 하나 씩 벗어던지며 샤워실로 들어섰다.
